●백두대간.
"백두대간(白頭大幹)을 글자 그대로 풀어 보면 '백두산 에서 비롯 된 큰 산줄기"
라는 뜻으로 한반도 의 뼈대 를 이루는 산줄기 를 말합니다.
즉, 백두산 에서 남으로 맥을 뻗어 원산 ·낭림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을 거쳐 태백산 에 이른 뒤 다시 남서쪽으로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 ·덕유산 을 거쳐 지리산 에 이릅니다.
이 땅의 대표적인 산 들을 총 망라 하고 있는 셈입니다.
행정구역 으로는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에 걸쳐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산맥체계 로 보면 마천령, 함경, 낭림,(추가령 지구대), 태백, 소백산맥 의 일부 혹은
전부 를 연결 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지도상 거리 로는 전 구간인 백두산 에서 지리산 까지 가 1,625km이고, 남한 구간(지리산 에서 향로봉)은 690km에 이르는 장대한 산줄기 입니다.
우리 고유 의 산에 대한 관념 과 신앙 의 중심 에 자리 하며, 두만강· 압록강· 한강 ·낙동강 등을 포함한 한반도 의 대부분 의 강의 발원지 이기도 합니다.
한반도 의 생활권 을 동과 서로 나누는 경계 이고, 생태계 의 중심축 이 되어 이 땅의 문화, 사회, 역사, 환경 등을 이해 하는 바탕 이 됩니다.
결론적 으로 백두대간 은 한반도 의 자연 지리적 상징 이면서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입니다
.
(그림 : 간단하게 그려 본 백두대간 산경도. 산경도 는 산경표 에 기록된 1대간 1정간 13정맥 을,
현대 지도 에 작도 한 것으로 이우형 선생 의 작업 을 통해 세상 에 모습 을 드러냈습니다.)
백두대간 이란 용어 가 정식 으로 사용 된것은 이익 의 『성호사설』(1760년경)에서 입니다.
제대로 된 분류 체계인 1대간 1정간 13정맥 의 모습 으로 나타난 것은 1800년대 초에 편찬 된 것으로 보이는 『산경표』에 이르러서 입니다.
그러나 문헌적 으로는 10세기의 도선 의 『옥룡기』에서 처음 으로 그 자취 를 만날 수 있으며 이후 많은 자료 들에서 그 흔적 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도 에서는 현존 하는 가장 오래 된 지도 가운데 하나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권근, 1402년, 세계지도임)의 한반도 부분 에 선명 하게 그려진
백두대간 을 볼 수 있고, 이후 여러 지도 에서도 그 흐름 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산자 가 만든 <대동여지도>는 정확성 과 독창성 면에서 탁월 한 우리나라 대표 지도 일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 을 가장 잘 표현 한 지도 이기도 합니다.
(백두대간 개념도)
백두대간 이라는 자연 인식 체계 에서는 산을 생명 이 있는 나무 에 비유 하여 큰 줄기 와 작은 줄기 그리고 가지 로 나누어 국토 전체 를 유기적으로 바라 봅니다.
이러한 생각 은 풍수지리 에 뿌리 를 두고 있습니다. 이 땅의 기운 은 백두산 에서 비롯 됩니다.
우리나라 산들은 백두대간 을 타고 내려 오면서 각각 의 정맥 으로 나뉘어 집니다.
그 기운은 다시 각 정맥 들에서, 가지친 지맥 들을 통해 바로 우리들의 삶이 어우러지는 마을 과 도시 로 전달 됩니다.
이렇게 해서 전 국토 는 백두산의 정기 를 받아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 으로 살펴보면 거의 천년 세월 동안, 이땅 을 이해 하는 틀로서 전해왔던 백두대간 은 20세기 초 나라 와 겨레 의 운명 과 함께 사라 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 에는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 가 1900년과 1902년의 14개월간 한반도 지질 조사 후 논문 에 발표 했던 현재 의 산맥 체계 가 들어섰습니다.
80년의 세월 이 그렇게 흘렀고, 1980년 <대동여지도>를 연구 하던 이우형 선생 이 『산경표』라는 작은책 을 우연히 만남 으로써 백두대간 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6년 처음 으로 언론 에 백두대간 의 존재 가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백두대간 이 다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에 불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 으로 이제는 이 땅을 이해하는 틀(지리관)로서, 본디 의 자리 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 에서 백두대간 은 다음 몇 가지의 의미 를 내포 하면서 쓰이고 있습니다.
♧첫째, 옛 부터 내려 오던 전통적 인 자연 인식체계,
즉, 산과 강(물)을 중심 에 놓고 산천 을 이해 한 전통적인 자연 인식을 대표 하는 용어 로 쓰이는 경우 가 있습니다.
이는 글쓴이 에 따라 산경원리 혹은 산수분합원리 라는 용어 로 표현 되기도 합니다.
♧둘째,『산경표』에 기록 된 1대간 1정간 13정맥 중의 하나인 백두대간 이 있습니다.
이 경우 백두대간 은 이러한 분류 체계 의 중심 으로서 대표성 을 함께 가지게 됩니다.
♧셋째, 이 땅을 남북으로 잇는 산줄기 로서 종주 의 대상 이 된다든지,
생태축 으로 보존 되어야 하는 존재 로서의 실제적인 백두대간 이 있습니다.
이 셋은 때에 따라 각각의 의미 로 쓰이기도 하지만 따로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경우 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복합적인 이해 를 필요로 하는 상징적인 용어 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백두대간인가?
앞에서 얘기한 대로 백두대간 이 다시 부활 하고 일반인 의 관심 으로 다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백두대간을 주장 할까요?
전 국토의 2/3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이 땅을 이해 하는 틀로서 현재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으로 불리는 산맥체계
(앞으로 '산맥체계'라고 함)가 있습니다.
이 이론은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한반도 지질조사 후 논문으로 발표했던 것입니다.
야쓰 쇼에이 가 편찬 한 『한국지리』를 거쳐 일제 시대 에 이 땅을 이해 하는 산맥체계 로 채택 된 것이 1910년 전후 입니다.
그리고 해방된 지 50여년이 지난 현재 까지 거의 아무런 비판 이나 재 검토 없이 당연 스럽게 교육 되어 왔습니다.
백두대간 의 존재 가 알려지기 전까지 산맥체계 에는 아무런 문제 가 없어 보였습니다.
문제 가 있어도 그것을 반박 하거나 수정 할 지리관 이 존재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진 측면 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존재 가 알려지면서 상황 은 바뀌었습니다.
이 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특히 산악인들)에게 처음 백두대간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이 땅의 지리적(지형적),
사실 을 있는 그대로 간단 하면서도 정연한 논리 로 설명 하고 있음에 감탄 할 따름 이었습니다.
이제까지 품고 있던 의문 들이 봄눈 녹듯이 사라 졌습니다.
이제 왜 소백산맥종주 가 불가능 한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조상 들이 써오던 훌륭한 지리 인식 체계 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람 과 자연 을 하나로 바라보는 유기체적인 관점 이 깃들어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두대간 이 가진 간단 하고 정연한 논리, 천년 을 내려 온 전통 지리 인식 체계, 유기체적 사고는 현대 한국인 에게 가장 필요한 지리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산맥체계 는 그 자체 로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를 거치고 현재 까지 교육 되면서 여러 문제점 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를 간단히 살펴 봅니다.
가장 큰 문제 는 산맥체계 가 지질학 에 뿌리 를 두고 있으면서 지리학 의 자리 를 차지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땅 속'의 보이지 않는 지질구조선 을 '땅 위'의 실제 산을 연결해 놓은 선(즉 산맥)으로 둔갑 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실제의 지형 지세 와 달리 산맥이 강을 건너고, 강이 산맥을 가로 지르는 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론 이 현실 을 반영 한 것이 아니라, 이론 에 따라 지도 위에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이 다시 현실 의 산이 되어
우리에게 교육 되니, 이론과 실제 는 따로 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누구도 산맥체계로 는 동일한 위치의 동일한 산맥을 그릴 수 없습니다.
현재 제작 되는 지도 들의 산맥표시 를 살펴보면 대부분 서로 다르고 대충 의 윤곽만을 짚어 산맥으로 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 산맥도 를 보면 산이 강을 건너고, 강이 산을 가로 지르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운데 마치 휴전선 처럼 추가령 구조곡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산맥체계 가 지질학 에 뿌리 를 두고 있음으로 하여 발생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땅을 바라보는 관점 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근대 들어 땅 속을 조사 하기 시작 한것은 인간 의 호기심 과 지적 욕구 도 동기 가 되었겠지만,
본질적 으로는 지하자원 의 개발 과 관련 이 깊습니다.
근현대 문명 은 사실 땅 속의 지하자원(석탄, 석유, 가스 등)을 기반 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따라서 지질학 에 기반 을 둔 산맥체계 의 교육 은 은연중에 자연 을 개발 이나 착취 의 대상 으로 인식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지도 를 보면서 우리나라 는 왜 지하자원 이 이렇게 빈약할까 하고 생각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땅이 가진 아름다움 이나 생명력 을 모르던 시절 의 철없던 생각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바뀌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백두대간 에 담겨 있는 사람 과 산천(자연)이 기를 통해 서로 교감하는, 즉 생태적 이고 생명체적 지리관 을 교육받고 접했다면,
무조건적 인 개발 과 파괴 의 현장 을 지금 처럼 둔감 하게 바라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산맥체계가 가지는 문제는 또 있습니다.
실생활 과 밀접한 산 이나 강 등 지형지물 들이 연속적인 의미 보다는 땅 속의 서로 독립적인 지질 이 강조되면서,
이 땅은 하나로 연결된 단일체가 아닌 서로 다른 지질 의 집합체 로 인식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한반도 의 중간 에는 추가령 구조곡이 있어 지도 를 펼쳐놓으면 남쪽 과 북쪽이 마치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 인것처럼 보입니다.
백두대간이 이 땅을 백두산 을 뿌리로 한 하나의 나무 에 비유 하여 유기체적인 동질성을 강조 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 입니다.
시각적인 이미지 는 사람의 심성 에 큰 영향 을 줍니다. 산경도 와 산맥도 를 보시면서 그 차이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나라를 잃은 충격 과 서구 문물 의 유입 에 따른 정체성 의 혼란 과정 에서 이 땅에서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문화적 유산 에 대한 올바른 평가 와 관심 에 인색 했습니다.
어떤 경우 는 '미신', '봉건적', '전근대적' 등의 용어 를 붙여 마치 옷에 달라 붙은 벌레 처럼 빨리 떼어내 버려야 할 존재 로까지 비하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젊은 세대 와 이전 세대 사이 에는 겉모습 에서 사고 방식 까지 심각한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경제적인 여유 는 얻었지만 마음 이 돌아갈, 고향 같은 안식처 는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화 란 연속성 이 무엇 보다 중요 합니다.
백두대간 을 주장 하는 중요 한 이유 중의 하나 가 이것 입니다.
외세 에 의해 단절된 문화, 스스로의 나태 로 잊혀지거나 비하 해 온 문화 중에서 오늘날 에도 충분한 의미 와 가치 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이를 되살려서 문화 의 연속성 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 의 의무이자 권리 라고 생각 합니다.
이것은 우리 문화의 다양성 을 위한 밑거름 이기도 합니다.
● 1대간, 1정간, 13정맥은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원리에 의해 이름 지어졌는가?
1대간은 백두대간, 1정간은 장백정간, 13정맥은 낙남정맥,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
한북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낙동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입니다.
이렇게 분류 한 가장 큰 틀은 산경원리(山經原理)나, 산수분합원리(山水分合原理)라고 불리기도 하는 바로 산과 물(강)의 나뉨 에 바탕 을 두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 으로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의역 하면 이렇습니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의 원리 로 설명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본적 으로 이 원리 에 따라 이름 이 지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한강 의 북쪽 을 달리는 산줄기는 한북정맥, 남쪽을 달리는 산줄기 는 한남정맥 이라고 부릅니다.
달리 설명 하면 한북정맥 과 한남정맥 은 한강을 감싸는 울타리가 되는 셈입니다.
나머지 정맥 들도 모두 이런 원칙 으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다만 장백정간은 정맥 이, 아닌 한 단계 위의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나라의 산줄기 를 온전히 동서로 가르는 최장 의 산줄기'에 대한 예우 로 보입니다.
그리고 해서정맥 과 호남정맥 은 강이 아닌 본디 가지고 있던 지역 의 이름에 따라서 지어진 특징 이 있습니다.
●백두대간 은 언제 부터 역사 에 등장 하는가?
이익의 『성호사설』(1760년 경)에 "도선 이 지은 『옥룡기』에 '우리 나라 의 산은 백두산 에서 일어나 지리산 에서 끝났으니'라는" 설명 을 인용 하고 있어서,
도선 이 10세기 인물 임을 감안 하면 천년 이 넘는 역사 를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 후 고려 공민왕 때 우필흥 에 의해 비슷한 내용 이 얘기되고 있음도 기록 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와 『성호사설』에서는 산줄기 묘사 나 기록, 용어 들이 구체적인 이름 으로 등장 하기 시작 합니다.
『성호사설』에서 '백두대간'이란 용어 가 처음 쓰였고, 『택리지』에는 '대간', '청북', '청남' 등의 용어 가 나옵니다.
비슷한 시기인 1770년 경 여암 신경준 의 『산수고』와 『동국문헌비고』의「여지고」에 이름 은 붙여지지 않았지만,
『산경표』와 거의 같은 체계적인 내용 이 정리 되어 있습니다.
1800년대 초에 편찬 된 것으로 보이는 『산경표』에서 비로소 분류 체계 가 확립 되어 이름 이 붙여졌고 백두대간 이 완전한 모습 을 드러내게 됩니다.
지도 는 문헌적인 기록과 달리 시각적인 요소 가 강하기 때문에 조상들이 백두대간 의 존재 를 어떻게 인식 하고 있었는지 더욱 분명 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에서 제작 되어 현존 하는 세계지도 중 가장 오래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권근, 1402년)의 한반도 부분 에는 백두대간 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제작 된 <조선방역지도>나 정상기 의 <조선전도>(동국대전도라고도 부름) 등 여러 지도 에서도 산줄기 표현 에서 더욱 뚜렷한 모습 을 보이며,
<대동여지도>에서 더욱 체계적 으로 표현 되어 있습니다.
문헌적인 기록 이나 지도 를 통해서 볼 때 백두대간 은 오랜 세월 이 땅을 살다간 이들의 지리관 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이 체계적 으로 정리 된 것은 조선시대 후기 인 18세기에 들어서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 은 어떤 전문적인 학자 에 의해 발표 된 이론 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이 땅을 살다간 사람들의 실 생활 에서 쌓인 문화적,
지리적 경험 에 바탕 을 둔 지리관입니다.
따라서 이 땅이 존재 하는 한 그 가치 나 실용성 은 계속 될 것입니다.
●백두대간 은 어떻게 다시 부활 했는가?
백두대간 의 부활 과정 은 극적인 면 이 있습니다.
산악인 으로서 지도 를 제작 했고, 그 결과 이 땅을 표현 한 지도 중 대표격인 <대동여지도>를 연구 중 이던 이우형 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1980년 이우형 은 우연하게 고서점 에서 1913년 조선광문회가 활자본 으로 간행한 『산경표』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동여지도> 연구 중 풀리지 않는 의문에 휩싸여 있던 그에게 『산경표』는 단비 와 같은 존재 였습니다.
『산경표』와 이우형 의 만남 은 필연 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산경표』가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다 해도 그가 산, 지도, 대동여지도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모른다면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 생전의 이우형 선생의 모습. 그는 산경표와 대동여지도 연구를 통해 백두대간을 부활시킨 이 시대의 고산자였습니다.)
몇년간의 연구 끝에 <대동여지도>와 『산경표』의 비밀을 알아낸 이우형은 1986년에 신문을 통해 백두대간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2년 후 대한산악연맹의 학술지 「엑셀시오」에 특집기사와 종주기가 실리면서 산악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시 2년 후 박용수에 의해 조선광문회본 『산경표』가 해설과 함께 영인본으로 간행되었고, 월간 「사람과 산」은 관련 연재기사를 내보내면서 이후 지속적인 관심으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조석필은 1993년에『산경표를 위하여』를, 1997년에 이를 보완하여 『태백산맥은 없다』를 펴내면서 본격적인 부활을 알렸고, 2000년 현진상은 『산경표』를 한글로 옮기고 관련 연구 성과를 덧붙인 『한글 산경표』를 펴내어 백두대간 연구의 대중화를 위한 발판을 놓았습니다.
●백두대간 과 현재 의 산맥 체계 가 가지고 있는 차이점은?
간단 비교 하면 이렇습니다.
♣백두대간 은..
1) 땅 위에 실제 로 존재 하는 산과 강을 그렸습니다.
2) 산경표 는 산에서 산 으로만 이어지고 실제 지형 과 일치 하는, 지리학적 으로 자연 스러운 선입니다.
♣현재 의 산맥체계 는..
1) 땅 속의 지질 구조 를 기준 으로 그렸습니다.
2) 산맥 은 강에 의해 여러 차례 끊기고 실제 지형 에 일치 하지 않는, 인위적(지질학적)인 선입니다.
이 밖에 앞에서 언급한 산맥체계 가 지질학 에 바탕 을 두고 있음으로 해서 발생 하는 현실과 의 괴리 와 땅을 바라보는 시각 의 차이 도 기억 해 둘 일입니다.
●백두대간 을 알아야 하는 이유?
첫째로, 백두대간 은 과거 는 물론이고 현재 까지 이 땅에서 이루어진 지리적 요소 와 관련된 모든 문화 를 이해 하는 핵심 입니다.
역사, 지리, 경제, 국방, 사회, 음악, 미술, 기상 등 한국학 과 관련된 사실이나 현상 들은 현재 의 산맥 체계 로는 제대로 파악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현재 의 산맥 체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어놓은 가상 의 선이기 때문에 현실 에 적용할 경우 문제 가 생기게 됩니다.
단지 이제 까지는 그것을 무시 하거나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백두대간 이라는 자연 인식 체계 를 통하여야 만 우리 문화 의 본질 에 접근할수 있고,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자연 을 바라보는 관점 이 개발 이나 착취 의 대상 이 아니라 공존 의 대상 임을 자연 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산천 은 살아있는 존재 로서 사람 과 함께 교감 하고, 백두산 을 한 뿌리 로 하는 살아있는 이 땅에서 살아 간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면,
현재 와 같은 무조건적인 인간위주 의 개발 논리 는 우리 곁에서 자취 를 감출 것입니다.
●산천 은 살아있는 "땅"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개발 을 한다면 얼마든지 사람 과 자연이 함께 할 수 있고,
그러면 우리 의 삶과 정신 이 훨씬 풍요롭고 맑아질 것입니다.
산 이야기 에서..